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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론
2021년 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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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론
2020년 12월 20일
In 일반
🤗2020.12.20 묵동청년회🤗 *출석 이아론, 최예슬, 배지수, 박종훈, 김경환, 유명한, 이은창, 고수미, 김수경, 짠더니, 우효원, 이종현, 김이삭, 박종우, 오하늘, 하정은, 하지은, 문은비, 박정은, 김주성, 변희영, 김아영 *찬양 -오 주여 나의 마음이 -만세 반석 -밀알 -성령이 오셨네 *말씀(이아론br) 미국에서는 헌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나의 양심의 핵심이 교회에 나가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이라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오지 마시고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세요 라고 하는 것은 교회 체제 안에서는 올바른 것이죠. 그러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 더 핵심적인지 판단하고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 몇몇 교회들은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에요. 기독교가 무엇이 핵심인지는 사람마다 교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 리더들은 교회의 핵심이 무엇인지, 어떤 교리에 따라 교회를 운영하는지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우리가 정말 모이는 것이 핵심이고 모이지 않으면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경우에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따라서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생각도 드느냐면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도 핵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에서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는 결국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이웃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화나게 하거나 공동체 안에서 불화를 만드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모이는 것과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충돌하는 부분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함께 모이는 것과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충돌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오지 않은 분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건강을 지키자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발동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오신 분들은 오는 것에 대한 가치에 따라 오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들이 마음을 닫아버리면 복음을 전하는데 큰 어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이전에도 있었지만 교회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더 커졌죠. 우리나라에는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이 또 하나의 종교가 된 것 같아요. 그들은 기독교는 거짓말이다, 믿으면 안 된다고 열심히 전도를 해요. 그들은 어떤 하나의 이론이나 공통의 개념들을 형성하면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우려가 됩니다. 모이는 것과 이웃을 돕는 것이 상충하는 상황이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강하게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이웃에게도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습관적으로 기도를 위해서 찾으셨던 감람 산 근처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시간 정도 기도를 하시고 돌아와 보시니까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깨어있을 수 없냐 깨어서 같이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또 나가서 기도하십니다. 다시 와서 또 보니까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깨우셨다는 말은 없고 다시 가셔서 세 번째 동일한 기도를 하시고 제자들을 깨워서 ‘이제 내려가자 나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될지를 항상 배우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런 말씀이 없지만 다른 복음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특정한 장소에서 시간을 내서 습관적으로 하나님과의 기도시간을 가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을 살면서 계획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느냐를 보라는 것입니다. 밥 먹기 전에 하는 세 번의 기도는 굉장히 규칙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계획적인 기도가 단지 밥 먹기 전에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밖에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그런 습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야구를 보면 경기를 오래한 사람일수록, 나이가 많은 플레이어일수록 타석에 가서 공을 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루틴이라고 하거든요. 한번 스윙하고 타격폼을 잡을 때까지 모자 한번 벗었다가, 다시 장갑 한번 풀었다가 다시 잠그고 그런 장면을 보신 적이 있죠? 굉장히 길어요. 몸에서 그 순서들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처음에는 머리를 정리하고 땀이 안 나도록 하고 장갑을 타이트하게 잡고 방망이 위치를 잡고 하는 것일 수 있잖아요. 한참 하다 보면 아무 의미 없이 되는 거예요.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되어있을 수 있거든요. 항상 해왔으니까 처음에는 맛있는 음식을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가지겠지만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도와는 조금 달라요. 감사죠. 나에게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하시는 기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밥 먹기 전에 기도한 것 가지고 기도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서는 몇 주전에 이야기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기도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꽤 긴 시간을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은 짤막하게 나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부분은 이것만큼은 내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가능하다면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도 관계가 끊겨지게 되는 엄청난 고통을 안하고 싶다는 말이거든요. 이것이 나의 원하는 바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부분은 ‘나의 마음은 이러한 마음인데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에 따라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모습입니다. 기도하시면서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깊은 교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쭉 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오래 걸려야 한다는 말에 했던 말을 또 하거나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를 하셨을까요?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더 이상해집니다. ‘안 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 원대로 하세요. 안 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 원대로 하세요’라고 반복하면 마치 아이가 아빠에게 ‘초콜릿 먹어도 돼? 안돼. 근데 초콜릿 먹어도 돼?’라고 반복하는 대화와 비슷해집니다. 여전히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떼쓰는 기도를 하셨겠느냐는 것이죠. 기도의 정의를 다시 내리시길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 저에게 원하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세요’라고 이야기하고 눈을 뜨고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기도는 대화니까 내가 한 말이 있으면 듣기를 해야죠. 어떻게 들을 거예요? 내가 기도하고 가만히 있으면 음성이 들립니까? 만약 말씀이 떠오른다면 99.9퍼센트는 읽어본 적이 있고 기억하는 말씀일 거예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기도를 하고 싶으면 하나님께 원을 드리고 눈을 뜨고 성경을 찾아서 읽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내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교제를 신청하고 묻는 게 낫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에 대답을 듣고 수긍을 하는 시간도 가지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함께 하길 원하셔서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오래하는 것은 좋습니다. 생각하고 있는 여러 대상들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중보기도에 대해서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고 힘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부분, 직장을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고 성경을 읽고 교제를 하고 부모님께 이야기하고 이런 것들이 오히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에 가깝다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눈을 감고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의 전체적인 주제를 떠올리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생각하는 것이 기도인 것이에요. 묵상할 수 있는 내용이 적은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잘 안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차라리 눈을 뜨고 성경책을 펴서 관련된 말씀을 찾아보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요 라고 인도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대로 계획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필요가 있어요.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는 가급적이면 중보기도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가족과 친구를 위해서,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묵동교회청년들이 기도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기도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결론을 내는 과정이 기도입니다. *광고 -웹하드 나스를 구입했습니다. 짧은 영상이라도 찍어서 올려놓으면 누군가 편집을 할 것입니다. 가르치는 학생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지 마시고 일단 찍으세요. 그러면 편집해줄 것이고 유튜브에 올리면 아이들은 아는 사람이 나와서 좋아할 것입니다. 묵동교회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촬영용 카메라와 크로마키(초록색 배경)를 사놨습니다. 교회에서 촬영할 때 등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학생들과 주일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고민해보고 찍어보시고 웹하드에 올려주시면 공유해서 유튜브에 게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웹페이지를 만들고 있는데 아직 완성은 안됐습니다. 주소는 mookdong.or.kr 또는 mookdong.org를 확보해놓았고 1년정도 mookdong.com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동교회 옛날 영상들이 필요합니다. 사진도 괜찮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마스크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함께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 필요합니다.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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